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사람들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지 우리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혁명으로 탄생한 사회가 어떤 사회일지에 관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라디미르 레닌은 혁명의 경험을 살펴보고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끌어 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 국가”, “노동계급의 지배”를 말한 바 있다. 둘은 주로 이런 표현을 썼지만 이와 비슷한 다른 표현을 쓰기도 했다.
오해를 많이 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그런 표현의 하나다.
중요한 점은, 이 표현의 속뜻이 민주주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는 민주주의를 전제한 표현이다. 노동계급은 아래로부터 조직된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모든 부분을 짓누르는 “부르주아 독재”, 즉 자본 지배의 반대말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자본에 대한 독재를 조직해 자본주의 독재를 대체해야 한다.
19세기 이래로 수많은 혁명가들은 혁명을 한 줌의 헌신적 지도자들이 민중의 이름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런 사람들이 혁명적 독재를 해, 민중이 권력을 나누어 받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민중을 “교육시킬” 것이라고 봤다.
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런 식의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에 반대했다. 둘은 사회주의를 쟁취할 유일한 방법은 민주주의와 자치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봤다.
지난 연재에서 다뤘듯, 노동자 국가라면 혁명을 수호하고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손에 있는 생산 수단을 빼앗아 와야 한다. 이는 구체제의 자본주의 독재에 맞서 다수가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레닌은 이를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집약했다. “압도 다수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 그 대중을 착취·억압하는 자들을 힘으로 억압하기(즉, 민주주의에서 배제).”
이전 모든 계급 사회에서는 소수가 다수를 착취했고, 그 소수는 국가를 통해서만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수인 계급이 사회를 통제한다면 착취도 끝날 것이고, 강제력이 더는 사회 구성 요소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형태의 국가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계급이 없어지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레닌은 계급과 착취가 사라지면 국가도 “사멸”할 것이라고 썼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자유는 없다.” 레닌은 이렇게 썼다. “자유가 있는 곳에 국가는 없을 것이다.”
이런 차이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다뤄야 할 것은 공산주의 사회다. 공산주의 사회는 그 자체의 토대 위에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현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사회에는 “경제·윤리·지성 등 모든 면에서 그 사회를 낳은 옛 사회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관계
사회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보다 크게 우월한 점이 하나 있을 것이다. 바로 개개인이 그 자신이 만든 생산물과 맺는 관계가 변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생산물을 집단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사회 모든 면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어서 마르크스는 생산이 사회적·개인적 필요에 따라 발전하면서 인류가 자신의 인간성을 발달시키기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풍요가 만개하면 개인 간의 경쟁과 그것이 낳는 모든 부산물이 철폐될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이런 공산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누구나 “모든 영역에서 성취를 거둘” 수 있는지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관장하기 때문에 내가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은 저것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동이나 비평가가 되지 않고도 마음 내키는 대로 오전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 소 떼를 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할 만한 더 나은 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 그 자체는 더는 벗어나고픈 족쇄가 아니게 될 것이다. 노동은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삶의 최고의 갈망”, 필요한 일이자 동시에 사람들 간의 관계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충만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마르크스가 말한 “선사(先史)의 끝”이자 진정한 인류 역사의 시작일 것이다.
이 글은 본지의 기본 입장을 해설하는 기획 연재의 여덟 번째 글이다. 다음 연재 글에서는 선거가 변화를 이룰 수단일지에 관해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