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여 명이 외치다: “팔레스타인 연대는 계속된다”

110월 12일 오후 서울 안국동 열린송현녹지 광장에서 열린 가자 학살 2년 10·12 전국 집중 행동의 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조승진

가자 전쟁 2년을 기해 세계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열린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도 1,7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집회와 행진으로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연대를 표했다.

10월 12일 오후 2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하 “팔연사”)의 ‘전국 집중 행동의 날’ 집회가 안국역 인근 열린송현녹지광장 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와 행진은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 중 가장 큰 축에 들었다. 집회 장소가 가득 찼고 행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합류했다.

수도권은 물론 부산, 대구, 울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모였다. 여러 대학생 동아리들과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교사들’은 별도 참가단을 꾸렸다. 친구끼리 온 참가자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단위 참가자도 많았다.

오랫동안 팔연사 집회에는 한국인, 재한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사람들이 참가해 왔는데 이 날은 특히 더 그랬다.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처음 참가했다는 고등학생 최윤서 씨는 이런 다양성을 가장 인상적인 점으로 꼽았다. 주최측은 아랍어, 영어, 인도네시아어, 방글라데시어 통·번역을 제공했다.

참가자들의 표정이 무척 밝았다. 이탈리아 200만 총파업 등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역대급으로 몰아치는 가운데 그 부양력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본지 기자들과 대화한 참가자들은 휴전에 대한 낙관을 경계하며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믿을 수 없는 자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집회 사회를 맡은 재한 아일랜드계-팔레스타인인 엠마 씨는 2년 전 10월 7일 공격의 의의를 짚으며 집회를 열었다.

“팔연사 운동은 2023년 10월 11일 팔레스타인인들과 그들의 저항에 연대를 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면은 벗겨졌고 세계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게 됐습니다.

“트럼프가 발표한 휴전을 가자 주민들이 반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운동은 동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재한 팔레스타인인이고 가자지구 출신인 살레흐 란티시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조승진

첫 연설자는 가자지구 출신의 재한 팔레스타인인 살레흐 란티시 씨였다. 이번 전쟁으로 많은 친척을 잃은 그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인종학살이 지속되는 동안 멈추지 않고 연대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둘째, 팔레스타인의 대의는 가자지구의 인종학살을 막는 것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령 자체를 끝내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의 운동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연설자는 저명한 작가이자 ‘아시아문화네트워크’ 이사장인 방현석 씨였다. 그는 이스라엘에 맞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살인 공범, 학살 방조자”가 되는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떠나고 미국과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과 단교할 것을 요구했다.

‘아시아문화네트워크’ 이사장인 방현석 작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조승진

또 많은 연설자들이 지난 2년 동안 국내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성장해 왔다고 지적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 최규진 씨는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글로벌 운동의 일부이고 성취가 결코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팔레스타인 해방을 앞당길 마중물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인 데 이어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영국, 중동에서도 수십 수만 명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게 아닙니다. 꾸준히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쳐 온 전 세계 양심적 민중들의 연대 덕분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난 2년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킨 우리가 그 불꽃의 심지입니다.”

이날 집회에는 부산, 대구, 울산, 광주 등 전국에서 참가자들이 결집했다ⓒ조승진
10월 12일 오후 가자 학살 2년 10·12 전국 집중 행동의 날 집회가 서울 안국동 열린송현녹지 광장에서 열리고 있다ⓒ조승진

미국인 키스 씨도 연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지난 2년 동안 불법적 학살을 저지른 자들이 지금 협상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평화를 염원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이 학살자들이 겁에 질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수무드’ 구호 선단과 이탈리아의 대중 파업, 전 세계 모든 도시에서 성장하고 있는 시위들은 이스라엘의 정당성이라는 가면을 영원히 벗겨냈습니다.

“트럼프는 들끓는 세계를 달래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책임을 회피하도록 놔둬선 안 됩니다.”

이날 노동자연대 회원들은 트럼프의 가자 휴전을 분석한 유인물을 3개 국어(한국어, 영어, 아랍어)로 배포했는데, 집회 참가자와 행인 모두에게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팔연사 집회의 자원봉사자들(‘팔봉이’)은 지난 2년간 매주 집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팔봉이 대표로 한태연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조승진

한편 연단에서는 팔연사 집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팔봉이’ 한태연 씨가 연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겪은 변화를 풀어냈다.

“팔레스타인에서 전해지는 끔찍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공범자들인 정부 세력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팔봉이’ 활동을 하면서 거대한 연대의 힘을 느꼈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원동력은 정부 세력들이 아닌 민중의 힘이라는 것도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여러 대학 캠퍼스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들이 생겨났고, 이날 집회에도 여러 대학의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들이 참가했다. 고려대학교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 ‘쿠피예’의 회원 호세이파 씨가 무대에 함께 오른 그들을 대표해 발언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역사적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 세계를 뒤흔든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여기 한국, 특히 [대학생 공동 행동이 있었던] 지난 10월 1일 신촌 거리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의 정의로운 함성으로 넘실거렸습니다.”

글로벌 운동의 일부답게, 팔연사 집회에는 다양한 배경의 이주민들이 참가한다ⓒ조승진
참가자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이 끝나고 팔레스타인이 독립될 때까지 운동이 계속돼야 한다는 주장에 큰 호응을 보냈다ⓒ조승진

이집트인 호세이파 씨는 아랍 정권들이 팔레스타인 억압에 공모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해방과 아랍의 해방이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향한 길 위에는 부패한 아랍 정권들로부터의 해방도 놓여 있습니다. 그 순간은 이미 우리 앞에 있습니다. 내부로부터의 저항은 점점 커지고 있고, 폭발의 임계점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글로벌 연대의 물결을 키워서 우리 지배자들을 압박해야 합니다.”

서울 인도네시아 알팔라흐 모스크 대표 로비 무하람 씨도 지난 2년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짚었다.

“이 인종학살로 가자의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 어린이·어머니·노인이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에 외칩니다. 이제 전 세계에서 더 많은 양심의 눈들이 뜨였다고 말입니다.

“미국 정부에 말합니다. 역사는 당신을 살인자들을 감싸고 학살을 지원한 자들로 기억할 것이다!”

이소선합창단의 공연을 하고 있다. 다양한 이주 배경 참가자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주최측은 영어 가사를 제공했다ⓒ조승진

이소선 합창단은 ‘그날이 오면,’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먼 훗날,’ 영화 레미제라블의 삽입곡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집회의 열기를 북돋았다.

집회를 마치고 행진이 시작됐다. 수많은 팔레스타인 깃발들이 휘날렸고, 저마다 모국어는 다르지만 입을 모아 구호를 외치는 역동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행진은 참가자들이 팔레스타인 저항을 지지하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자리였다ⓒ조승진
10월 12일 오후 가자 학살 2년 10·12 전국 집중 행동의 날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서울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조승진

행진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잠시 멈춰 항의를 표했다. 여러 행인들이 호응하며 박수를 쳤다.

대열에 반갑게 손을 흔들거나 가게에서 황급히 나와 카메라에 담는 행인들도 있었다.

대구에서 온 대니 씨는 행진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 집회는 기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어떤 분이 우리 행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어요. 저도 울컥했습니다. 정말 멋진 집회였어요.”

구호로, 깃발로,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의상과 각종 팻말로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연대를 표현했다ⓒ조승진
많은 참가자들이 손수 만든 팻말도 많았다. 주최측은 집회 장소 한켠에 참가자들이 스스로 팻말을 만들 공간과 재료를 제공했다ⓒ조승진

행진은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프리 프리 팔레스타인”을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회자인 엠마 씨는 1967년 이후 고향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부친의 상황을 전하며 운동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와 대화한 여러 참가자들도 이런 호소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집회를 위해 상경한 멕시코 이주민 마리아 씨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감내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서울까지 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자신이 있는 부산에서도 격주로 하는 일요일 팔연사 집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팔레스타인 연대 동아리 ‘얄라 연세’의 김산 씨도 캠퍼스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쟁 이전 상태도 결코 평화롭지는 않았잖아요. 앞으로도 진정한 해방을 이룰 때까지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팔연사는 서울, 울산, 대구, 부산, 인천에서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고 있다. 서울에서는 10월 18일 토요일 오후 2시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다음 집회를 갖는다.

이소선합창단의 공연은 많은 참가자들의 투지를 고무했다ⓒ조승진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함께 팔레스타인 연대를 외치는 모습은 인사동 거리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조승진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종로를 누비며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를 외쳤다ⓒ조승진
많은 청년과 학생들이 이날 집회 동원을 위해 오랫동안 힘써 왔다ⓒ조승진
향도의 적절한 구호는 긴 대열에도 불구하고 행진 대오가 한 목소리를 내도록 이끌었다ⓒ조승진
이날 집회는 국적을 막론하고 청년들이 많이 참가했다ⓒ조승진
참가자들은 휴전이 끝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인종학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승진
이재명 정부는 이스라엘과 교류 협력을 중단해야 한다ⓒ조승진
히잡을 쓴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조승진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기사 후원하기 (1000원부터)

Loading

Related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