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 윤석열 정부가 또다시 노동시간 유연화를 획책하다

김광일

윤석열 정부가 11월 13일에 노동시간 개악 계획을 수정 발표했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기세 등등하게 발표한 이른바 “주 69시간제”는 광범한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윤석열은 유체이탈 화법을 쓰며 보완을 요구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큰 틀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며 시간 벌기에 나섰고, 이번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동시간 개악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정책 방향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조업과 건설업 등 일부 업종의 생산, 정비 등의 직종에서 먼저 노동시간 유연화를 시행하되, 지난 개악안과 달리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개악안에 대한 반발을 의식한 탓인지, 윤석열 정부는 “주당 근로시간 상한 설정”(1주 60시간이 유력하다)과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완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기간을 늘리는 것은 고수하고 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기간을 늘려 특정 기간 장시간 노동시간을 허용하려는 것은 노동시간 유연화와 관련이 있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특정 시기에 압축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광범한 반발에 부딪히자, 윤석열은 노동시간 연장 꼼수안을 내놓았다 ⓒ조승진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반감이 크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가적인 소득을 위해 연장근로를 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노동자 58.3퍼센트가 반대했다! 연장근로 의향이 있다는 노동자들조차 55.7퍼센트는 최대 주간 근로시간은 현행 주52시간 한도내에서만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시행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실제 노동자들이 원하는 노동시간은 평균 36.7시간이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들은 장시간 근로 발생의 가장 큰 이유로 “고질적인 인력난”을 꼽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고용 확대와 인력 충원이 아니라 노동시간 유연화로 오히려 더 긴 노동시간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업종과 직종?

고용노동부는 정책 방향에서 노동시간 유연화 개악을 일부 업종과 직종에서 시도하겠다고 했다. 제조업과 건설업의 생산, 정비직 등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일부 업종과 직종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시작하겠다는 것은 지난 개악안에 대한 광범한 반발을 염두에 둔 꼼수다.

그런데 제조업과 건설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고용 규모를 고려할 때 일부 업종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제조업은 GDP의 25퍼센트, 전체 취업자의 15.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건설업의 취업 비중은 7.7퍼센트다. 또한 제조업의 경우 근로시간 산업별 비교에서 장시간 노동이 유지돼 온 업종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주요 업종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도입한다면 이는 다른 업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업종과 직종별 노동시간 유연화 도입 시도는 노동자들을 업종과 직종으로 분열시켜 반대를 약화시키려는 수작이다. 이미 지난 3월 개악안에서 정부는 “근로자 대표”에 관한 법규정도 입법발의 했는데, 한 사업장 안에서도 근무형태나 직무 특성별로 부분적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가령 과반수 노동조합이 노동시간 유연화 개악에 반대하더라도, 특정 부문·사업부별로 결정을 달리할 수 있다.

경기도청 유튜브 ‘야근괴담, 사무실에서 방심하지 마’ ⓒ출처 경기도청 유튜브

물론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계획 추진이 순탄한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노동시간 개악안에 대한 반발이 여전히 상당하다. 고용노동부가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민주노총, 한국노총, 정의당, 진보당 등이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조차 “근로시간제도 개편을 포기하[라]”는 원내대변인 브리핑을 내놨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비판을 무마하려고 지난 개악안과 달리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조합 대표를 불러들여 협의하는 모양새를 갖춰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복원해 노동시간 유연화 개악의 불씨를 유지하면서 내년 총선 전후 입법 시도를 추진해 보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이런 점에서 개악안 발표 직후 일사천리로 대통령실이 한국노총에 사회적 대화 테이블 복귀를 요청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노총 지도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를 천명한 것은 윤석열의 개악 파트너 찾기에 협조하는 노동자 배신 행위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노란봉투법(노조법 2조·3조 개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 복귀는 윤석열의 기만 살려 주는 꼴이다.

윤석열과의 대화를 통해 개혁을 성취/방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Republished From: https://wspaper.org/article/30275?fbclid=IwAR3ahjTy7GnV0HBSAfuY_kn-2saH3RA7ugTgHQ-FmBIQHgO-3C9B5H08m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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