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한 듯 보였던 미국 은행 위기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8월 초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 중소 은행 10곳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하향 조정했다.
최근에는 신용평가사 피치도 JP모건 등 대형 은행을 포함해 미국 은행 70곳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반기 은행 위기를 낳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업용 부동산 침체 등의 악재들이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상반기의 미국 은행 위기가 해결되지 않았고 향후 더 심화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한 바 있다.(관련 기사: 3월 24일 자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는 금융 위기’)
올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보유 채권 등 자산 평가액이 하락해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파산했다. 그런데 연준은 최근에도 금리를 올렸고, 이로 인해 SVB가 겪은 자산 가치 하락 문제가 여전히 많은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상반기 은행 위기 이후 많은 예금자가 중소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 이 은행들의 수익성은 더욱 하락했다.
그래서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지역은행들이 실상은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익성이 하락한 상황에서 연준이나 연방주택대출은행 등으로부터 차입을 늘려 사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위기의 악화는 은행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올해 4월 사무실 용도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이전 고점에서 31퍼센트 하락했다. 거래량은 80퍼센트나 줄었다.
상업용 부동산은 은행 대출의 2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주거용과는 달리 변동금리 대출의 비중이 50퍼센트에 가깝다. 이 때문에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과 파산 위험에 취약하다.
특히, 중소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퍼센트 가량을 공급해 줬기 때문에 이 은행들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벌어지더라도 대형 은행들이 아니라 중소 은행의 위기에서 그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상반기에 SVB 등 중소 은행의 위기는 금방 대형 은행들의 위기로 번졌다.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은행들도 타격을 받아 스위스 제2의 은행 크레디스위스가 UBS에 매각되고, 독일의 최대 은행 도이치방크의 위기설까지 나왔다.
은행들이 이렇게 취약한 이유는 금리 인상으로 자산 거품이 꺼지는 문제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자산 거품이 부풀어 올랐던 것은 실물 경제의 이윤율이 낮은 가운데 각국 정부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로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고금리
그런데도 연준은 고금리 정책을 계속 유지할 예정이다.
최근 공개된 7월 연준 회의록에 따르면 회의 참가자의 다수는 현재 5.5퍼센트인 기준금리를 향후 더 올려야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소수도 있었다. 그들 내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수파든 소수파든 지금 당장 금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한다.
물가 상승률이 고점에서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3퍼센트가 넘어서 통화 긴축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은 더디게 떨어지고 있다. 연준 의장 파월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연준의 목표인 2퍼센트 물가 상승률을 2025년에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최근에는 한동안 하락세였던 유가가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며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
연준은 신자유주의적 교리에 따라 물가를 잡으려면 통화 긴축을 해야 한다며 금리를 올려 왔다.
그러나 최근 유가 상승의 원인을 봐도 물가 상승의 원인을 통화 공급 증대에서 찾는 연준의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유가가 상승하고 있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석유 가격을 올리려고 감산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하루 366만 배럴을 감산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것과 별개로 하루 100만 배럴을 감산하는 조처도 시행하고 있고 이를 9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산유국들이 이윤을 위해 석유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 유가 인상의 원인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도 석유 공급에 차질을 주는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소비자들에게 비용을 떠넘기면서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 이윤 주도 인플레이션인 것이다.
통화 긴축으로 경제 전체의 수요를 떨어뜨려서 물가를 잡겠다는 연준의 시도는 물가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경기 침체와 금융 불안정을 낳고 있다. 세계의 제조업 경기 지수는 지난해 말부터 위축 국면을 나타내고 있다. 실물 경제의 수익성 하락은 금융 부실을 더욱 악화시키는 근본적 요인이다.
최근 대형 부동산 기업들이 부도 위기에 처해 있고 위기가 금융권으로 확산할 조짐 때문에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논객은 ‘미-중 대결의 승패가 판가름 났다’는 성급한 평가를 하기도 한다.(애덤 포즌 피터슨국제연구소 의장, 《포린어페어스》 기고, 〈한겨레〉에서 재인용)
〈한국경제〉도 사설에서 최근 중국 상황을 언급하며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체 시장 개발과 규제 완화 가속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은행 위기는 미국도 중국처럼 부동산 위기와 취약한 금융권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게다가 중국의 금융 불안정과 저성장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앞길에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게 전가하려는 지배자들에 맞선 투쟁이 커져야 한다.
Republished From: https://wspaper.org/article/29799?fbclid=IwAR2NJgTKxSyuUj_vqM-5ULl04alIjhu8gvp0FBUGaEjXvublxs8Rk6U5g8M